안전관리자를 하면서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위험성평가를 정말 열심히 작성했습니다.
며칠 동안 현장을 돌고,
관리감독자를 만나고,
보고서도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지나 현장을 다시 가보면 이미 달라져 있습니다.
새로운 설비가 들어와 있고,
작업 순서도 바뀌어 있고,
협력업체도 바뀌어 있고,
작업자도 바뀌어 있습니다.
그런데 위험성평가는 그대로입니다.
예전에는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위험성평가는 1년에 한 번 하는 거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은 매일 바뀌는데 위험성평가는 왜 1년에 한 번만 바뀔까?
생각해 보면 위험성평가가 현장을 못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위험은 매일 생기는데 평가는 1년에 한 번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위험요인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작업자가 작업을 하다가
"여기 위험한데요."
라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사다리가 흔들릴 때, 바닥이 미끄러울 때, 지게차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 작업 순서가 바뀌었을 때, 협력업체와 동선이 겹쳤을 때.
이런 위험은 회의실에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이야기를 충분히 기록하지 않습니다.
TBM 시간에도 대부분 관리감독자가 설명을 합니다.
작업자는 듣습니다.
질문은 거의 없습니다.
의견도 거의 없습니다.
TBM이 끝나면 모두 작업하러 갑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위험성평가 시즌이 되면 다시 현장을 돌아다니며 위험요인을 찾기 시작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 순서가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위험성평가를 위해 위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발견되는 위험을 모아 위험성평가를 만드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TBM을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TBM은 교육 시간이 아니라,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입니다.
관리감독자가 가장 많이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작업자가 가장 많이 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작업하면서 위험했던 점이 있었나요?"
"불편했던 작업은 없었나요?"
"개선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있나요?"
이 질문 하나가 위험성평가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위험성평가는 문서를 잘 쓰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의 이야기를 많이 들은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위험성평가보다 TBM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TBM에서 나온 이야기 하나가 위험요인이 되고,
개선대책이 되고 다음 사고를 막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위험성평가는 결국 현장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회의실이 아니라 작업 현장에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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